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선의

cini 2020. 10. 28. 08:44

2020. 10. 19

 

굉장히 좋은 날이었다.

뭐가 좋았는지는 모르지만, 그냥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고,

또 그냥 뭔가 좋다고 생각하는게 좋고. 

그래서 그냥 좋은 날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기엔 뭔가 부족했었는데

그 때 마침 길에 떨어진 씨앗 하나를 발견한거다. 

이 좋은 흐름에 화룡점정이 되어줄 뭔가가 필요했던 나는 그걸 주웠고,

온갖 좋은 의미를 붙여가며 이름을 지어주며 실체를 알 수 없는 기쁨과 기대를 사람들과 나누며

그것을 땅에 심었다.

그게 뭐든 어쨌든 씨앗이었기 때문에 땅에 심자 싹이 났고, 자랐다.

그리고 잊고 있었고, 한참이 지난 후에 마당을 살펴보니

그 씨앗은 제법 큰 나무가 되어있었고 거기에 열매가 열려있었다.

그 날의 분위기나 기분은 잊은지 오래지만

이 나무의 이름과, 사람들과 나눴던 기쁨은 기억이 났고

그래서 또 다시 좋은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.

좋은 날, 이 좋은 열매를 혼자 갖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

정말 선의로, 

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보내주었다.

또 그 다음 소중한 사람에게.

다음 소중한 사람에게.

나는 살펴보지 않았다. 

이 열매의 성분이 뭔지. 진짜 이름이 뭔지. 얼마나 치명적인 독이 있는지.

그리고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았다.

그 열매를 받아든 사람들이 나의 선의에 행복해하다가,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 알게 되는 것이 두려워서.

내가 대체 어디서 부터 잘못한 것인지를 가늠하는 것 조차 너무 부끄러워서.

나를 배신한 것이 다름아닌 나 자신의 나태함과 오만이라는 사실이 너무 한심해서.